방망이를 들고 있는 그 사람─아니,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는 그것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.
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. 본능이었다. 그것을 본 순간부터 내 다리를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없었다. 그저 뛰었다. 그것도 함께 뛰었다.
하지만 어느순간 그것을 뒤로 한 채, 다리는 여전히 달음박질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. 내 의지로, 내 힘으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와 함께 뛰면서 전혀 본 적이 없는 그것의 정체를 생각한다.
스스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이해하려 한다.
빨간 상의에 검은 바지와 야구 모자.
생각할 수록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. 그것은 정말 무엇인가. 어쩌면 저승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.
불현듯 눈에 스치는 곳은 낭떠러지였다. 아하, 그래. 나는 부엉이 바위로 향했구나.
물론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출발했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. 그저 이 낭떠러지에 도착했으니 그러려니 한다. 이제는 막다른 길. 그제서야 내 다리는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스스로 제동을 멈추었다.
뒤를 돌아 보았다. 그것이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. 뒤를 돌아본 순간부터 다리는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. 늙은 몸을 이끌고 뛰어서 그랬는지, 혹은 그의 눈빛에서 느낀 알 수 없는 감정의 폭발에 휩싸인 것인지는 모른다. 그것은 아마 내 다리가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. 일부러 천천히 다가왔다. 마치 지금의 상황을 즐기듯이.
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. 움직일 수도, 말을 할 수도, 심지어는 그 어떤 표정조차 지을 수 없었다. 몸은 그대로 경직되어 있었고,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.
"담배 있나?"
"……."
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왔다.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다. 본능이었다. 내 본능은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, 내 목구멍을 통해 알려준 셈이었다.
내가 그것에게 본능의 소리를 내자, 그것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. 그것은 이미 꽤 가까웠다.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얼굴. 어디에선가 어렴풋이 본 적이 있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. 그것은 발걸음을 멈추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, 이내 무언가를 꺼냈다.
작은 종이 상자, 그리고 라이터.
그것은 나에게 두 물건을 살짝 던져 건내었다. 담배와 라이터. 피도 눈물도 없는 것만 같은 그것조차 나의 마지막 순간에는 측은함을 느낀 것인가. 나는 한 개피밖에 없는 담뱃갑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.
몸은 어느샌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. 그것에게 느낄 수 있었던, 한 순간일 뿐인 인간다운 면 때문일 것이다. 불이 붙여진 담배는 순식간에 타 올라 연기가 되어 저 멀리 사라졌다. 그는 나의 마지막 담배가 끝을 향해 달리기 전까지 가만히 있어 주었다. 담배를 모두 피었을때 그는 다시 나에게로 다가왔다.
다시 한 번 정신이 아찔해질 것만 같다. 이미 제 정신은 아니었다. 그가 천천히 다가올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. 어렸을 적에는 그다지 높지 않은 이 낭떠러지는 지금 나에게 끝이 없는 나락이었다. 내 귓등에는 그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마치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, 점점 크게 들려온다. 환청마저 들려온다. 초인종으로 죽음의 광시곡을 연주하는 환청. 제 정신이 아니다.
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졌다. 소리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다가왔는지 알 수 있었다. 어느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환청이 멈췄다. 영원으로 느껴지는 순간의 정적.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, 나는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.
중력이 나를 끌어당겼다. 아찔함과 알 수 없는 희락이 엄습했다. 온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만 같았고, 시원한 바람이 식은땀에 적셔진 몸을 헹구었다.
나는 발 아래─정확히는 바위 위를 내려다 보았다. 그는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.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.
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. 아하, 그것은 내 시계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. 지금은 논두렁에 버린 날개, 머릿속에서는 중력과 운지버섯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.
나는 떨어지는 것을 멈추고, 그리고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.
날개야 다시 돋아라.
날자. 날자. 날자. 한 번만 더 날자꾸나.
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.
©issess / build 21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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